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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줄거리 및 결말 해석. '직관과 실존 그리고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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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Kim_ 2020. 9. 1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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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간이 넘도록 답을 주지 않는 불친절한 영화.
▶ 차갑고 습기 가득한 영화
▶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에 대한 믿음.

최근 <반도>, <강철비2: 정상회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한국영화 몇 편을 봤는데, 짥게나마 영화 후기를 남겨보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미루던 영화 후기를 남기게 됐는데, 재미있게도 앞서 언급한 최근 개봉작이 아닌, 개봉한 지 4년이 넘은 영화 '곡성'이 후기의 대상이 됐다.

 

어째서 의식의 흐름이 <곡성>으로 이어졌을까. 마지막으로 봤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원인을 제공했다. 극 중, 인남(황정민)의 눈빛과 표정에서 '곡성'의 무당 일광(황정민)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김인남(황정민)

 

곡성(2016), 일광(황정민)

 

 

아래의 영화 <곡성> 후기는 크게 '소개'와 '결말 해석'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므로,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다면 '결말 해석' 부분은 보지 않기를 권한다.


 <곡성> 소개

<곡성>은 곽도원, 황정민, 쿠니무라 준, 천우희, 김환희가 주연을 맡았고 <추격자(2008)><황해(2010)>의 나홍진 감독이 전작과 마찬가지로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영화이다.

 

 

나홍진 감독의 이전 작품들은 모두 어둡고 차갑고 습한 기운이 전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곡성> 또한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다만 전작들과 달리, 곡성이라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면서 시골 풍경과 정감 가는 사투리가 어두운 이미지를 다소간 희석하는 면이 있긴 하다(영화 전반부에 국한해서 그러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어두운 면이 짙어진다).


- 영화 줄거리

곡성은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나타나면서 끔찍한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난다. 경찰인 종구(곽도원)는 반복해서 벌어지는 사건 현장에 출동하게 되고, 사건을 추적하게 된다.

 

 

곡성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심한 두드러기와 함께 피부가 검게 변하고 환각 상태에 빠진 사람이 주변 사람에게 잔혹한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가족 중 한 명이 이런 증상을 앓게 되면 나머지 가족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행위를 하게 된다.

 

 

그래서 사건 초기에 종구(곽도원)는 두드러기 증상에 주목해 동료 경찰에게 동네 피부과 탐문 수사를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는 무명(천우희)을 만나게 되는데, 무명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사건들의 원인으로 외지인(쿠니무라 준)을 지목했다.

 

"할매가 그러는디, 그 왜놈이 귀신이랴.
그놈이 자꾸 눈에 뵈는 것은
그놈이 자꾸 찾아갔고 뵈는 것이랴."

 

 

종구(곽도원)는 며칠 사이 그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기괴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리고 동네 주민들로부터 그 일본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듣기도 했고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서 그를 목격하기도 했다. 이윽고 종구는 산 깊숙이 위치한 그 외지인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집은 섬뜩했다. 방에는 제사를 올리기 위한 제단이 있고 벽에는 수없이 많은 사진이 붙여져 있었는데, 그 사진들은 그동안 희생된 사람들이 살아있었을 때의 모습과 죽은 이후의 모습을 찍은 것이었다. 그리고 종구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그 외지인의 방에 종구(곽도원)의 딸 효진(김환희)의 물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종구의 딸은 희생자들의 모습을 닮아갔다. 귀신에 씐 사람처럼 행동했고 공책은 괴이한 낙서로 가득 차 있는가 하면, 몸에는 두드러기가 돋아 있었다.

 

 

분노에 찬 종구(곽도원)는 외지인(쿠니무라 준)을 다시 찾아가 그의 집을 부숴버리고 이곳에서 떠나라고 경고한다. 한편, 딸의 증상이 더욱 악화하자 종구는 굿을 하기 위해 무당을 찾게 되고, 무당 일광(황정민)이 종구의 딸을 살피게 된다.

 

"며칠 전에 만나면 안 되는 것을 만난 적 있제?
그 양반 사람 아니여, 그 양반 귀신이여."

 

 

이후부터 영화의 후반부는 종구의 딸을 구하려는 일광(황정민)과 그 반대에 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대결 국면으로 가는 듯하다. 그러나 곧 무명(천우희)이 전면에 나오면서 관객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답을 알려주는 영화 '곡성'은 그 때문인지 이후로도 수많은 '곡성 결말 해석' 포스팅을 낳게 했다.

 

 

 


▶ <곡성> 결말과 해석

 '직관과 실존 그리고 믿음'

 

사람들은 어떤 것에 확신과 믿음을 가지는가? <곡성>은 이 물음의 답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래는 <곡성>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인용한 문구이다.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누가복음 24장 37~39절


'의심'이 '확신'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은 사물의 '분명한 형상'과 '물질적 실재함'에 대한 확인이다. 쉽게 말해,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을 확신하며 의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의 과정은 영화의 결말에서도 결정적 작용을 하게 된다.

무당 일광(황정민)은 종구(곽도원)의 딸 효진(김환희)을 해하는 악귀로 외지인(쿠니무라 준)을 지목했지만, 나중에는 그 외지인이 아니라, 무명(천우희)이 딸을 해치는 귀신이라고 한다.

 

"그 일본놈이 아니라, 그 여자가 귀신이여.
절대, 절대 현혹되지 마소.
당장 자네 딸한테 가야 되네."

 

 

"그놈 말 믿지 말어. 그놈도 한패여.
시방 가지 마. 시방 가면 다 죽어.
시방 가면 니 식구들 다 죽는다고."

 

 

"너 뭐여? 사람이여? 귀신이여?
나가 고것을 알아야 네 말을 믿을 거 아이야."

 

 

종구(곽도원)는 오로지 딸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러나 누가 자신의 딸을 해치려는 악귀인지 알 길이 없다.

 

처음에 의심했던 외지인(쿠니무라 준), 당장 딸이 있는 집으로 가야 한다는 무당 일광(황정민), 지금 집에 들어가면 식구들이 다 죽는다는 무명(천우희).

 

혼란스러운 종구가 일광의 말대로 집으로 향하기로 한 이유는 무명이 서 있던 곳에 떨어져 있는 딸의 머리핀을 봤기 때문이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의 말속에 자신의 행동을 결정짓지 못하던 순간, 종구(곽도원)의 마음을 결정짓게 한 것은 분명한 형상으로 물질세계에 실재하는 머리핀이었다. 결국, 종구는 무명(천우희)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에 들어가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게 된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을 믿는다."

 


물질세계에서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지닌다. 파국으로 치닫게 한 종구의 결심을 이끈 것은 직관만으로 쉽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머리핀이었다. 이처럼, 영화 <곡성>은 현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과 실존 사물에 대한 의존성에 주목하는 장면이 수차례 등장한다.

1. 야생 버섯


의문의 연쇄 사건이 발생하던 초기, 사건의 원인으로 야생 버섯을 지목했다. 보기 흉한 피부, 두드러기, 환각에 빠진 사람이 주변 사람을 해치는 연쇄 사건들이 야생 버섯을 잘 못 섭취해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의문의 사건을 분명한 형상으로 물질세계에 실재하는 야생 버섯을 통해 이해하려 한다.

 

 

2. 십자가


종구(곽도원)와 함께 동료 경찰 성복(손강국)은 괴이한 소문이 떠도는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집을 찾아가게 되는데, 성복의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있다. 고라니의 내장을 뜯어 먹는다는 등 섬뜩한 소문이 떠도는 외지인에 대한 두려움을 십자가라는 사물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다.

 

 

 

3. 일광(황정민)의 굿

 

 

무속신앙과 다른 신앙의 가장 큰 차이는 '굿'이라는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신앙과는 달리 무속 신앙은 무당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눈앞에서 스펙터클한 퍼포먼스를 선사한다. 현장에서 직관에 의해 확인되는 '굿'은 기도보다 더 용이한 믿음의 수단이 된다. 종구(곽도원)의 가족이 의학이나 기성 종교보다 무속 신앙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4. 신부의 말

 

"직접 보셨소?
직접 보도 않고 어떻게 확신을 하십니까?"

 


딸의 증상이 악화하고 나아질 기미가 없자, 종구(곽도원)는 교회를 찾게 된다. 그러나 신부는 종구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인데, 그 외지인(쿠니무라 준)은 살아서 실재하므로 귀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그 외지인과 관련해 떠도는 무서운 소문들을 직접 눈으로 봤냐고 되묻는다.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5. '외지인'의 조롱

종구(곽도원)와 함께 외지인(쿠니무라 준)을 만난 적이 있던 부제(부제품을 받은 성직자)는 외지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혼자서 그를 찾아간다. 외지인은 부제를 앞에 두고 성경 구절을 흉내 내어 조롱한다.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인용된 누가복음이 다시 떠오르는 장면이다. 본래의 모습으로 변한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실존 사물에 의지해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을 조롱하는 대목이다. 악귀의 모습으로 변한 외지인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부제를 보며 즐거운 듯 웃으며 말한다.


6. 관객의 착각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해 확신을 만들어 가는 습성은 영화 <곡성>을 관람하는 관객에게도 찾을 수 있다. 일광(황정민)은 악귀로 지목한 외지인(쿠니무라 준)을 향해 살을 날린다며 종구(곽도원)의 집에서 굿을 한다. 그와 동시에 외지인도 의식 행위를 한다. 감독은 둘의 의식 행위를 연속해서 교차시키며 대결 구도를 만들어낸다.

 

 

나홍진 감독은 이런 연출을 통해 의도적으로 관객을 혼란케 하고 오답에 이르게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확신과 믿음을 가지는 습성을 역으로 활용해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관객은 영화 상영 후 두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도 선과 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종구(곽도원)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자신의 딸을 구하려는 쪽인지 끝까지 알지 못했다. "네 딸을 살리려 하는 여자"로 자신의 정체를 밝힌 무명(천우희)의 말을 종구는 믿지 못했다. 마을의 수호신인 무명은 끝내 종구의 가족을 지키지 못하고 절규한다.

 

 

 

"형상과 실재"

 

이처럼 영화 <곡성>은 인간이 현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사물의 '분명한 형상'과 '물질적 실재함'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것,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은 확신과 믿음의 과정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보이는 것에 의존해 확신을 만들어 가는 습성, 감독은 이런 습성을 일광(황정민)과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보이는 것으로 관객에게도 체험케 했다.

 

 

<곡성>은 시작하고 두 시간이 지나서까지도 관객에게 혼란을 주고, 마지막 순간에서야 비로소 답을 주는 매우 불친절한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불친절함에 그치지 않는다. 관객을 끝없이 혼란케 하고 함정을 만들어 오답에 이르게도 한다. 이런 불친절함과 함정은, 사람의 마음속에 믿음과 확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직관과 실존이 얼마나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영화의 한 줄기와 그 맥이 닿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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