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에 앞서 그 어떤 정보도 얻지 않았다. 주인공들의 영화 소개 인터뷰나 그 흔한 영화 후기조차 전혀 찿아 보지 않았다. 사전 정보라고는 감독이 김윤석이라는 것과 비교적 일찍 VOD 출시가 된 것으로 보아,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구나'라는 추측이 전부였다.
영화는 세 명의 어른과 두 명의 여고생이 주가 되어 이끌어간다. 제목이 '미성년'이기에 두 명의 여고생 즉, 두 명의 미성년자가 제목의 대상이라 짐작할 수 있다. 첫 장면부터 여고생이 등장하고, 관객은 그 여고생의 시선을 통해 상황을 '목격'한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는 '미성년'이라는 제목과 여고생을 자연스럽게 연결짓게 된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 연결은 느슨해지고 결국, '미성년'의 대상은 또 다른 인물들로 대체된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Another Child'이다. 그리고 영화는 어른 모습을 한 'child'와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미성년'자를 쉼 없이 대비시키며, 이들 사이의 갈등과 긴장 관계를 이어나간다.
'윤아(박세진)'가 일하는 편의점에 술 취한 불륜 남녀가 들어온다. 이들은 편의점 안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윤아가 제지한다.
"여기 금연이에요."
술 취한 여자는 윤아를 흘겨보며 밖으로 나가지만, 이번에는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이 시간에 미성년자가 아르바이트하는 건 불법인데'라며 시비를 건다.
"아저씨도 저 아줌마랑 부부 아니잖아요."
남자는 도망치듯 편의점을 나서는데, 뒤따라 나온 윤아가 남자를 불러 세운다.
"아저씨, 서비스에요."
윤아는 피임기구를 땅바닥에 던졌고, 남자는 그걸 주워들고 여자와 함께 도망치듯 앞에 있는 모텔로 급히 들어간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에서는 어른 모습을 한 'child'와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미성년'자의 대조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데, 위의 장면이 이들의 긴장관계를 보여주는 첫 번째 장면이다. 이후에도 '윤아'의 엄마와, '주리(김혜준)'의 아빠 그리고 '윤아'의 친부와 학교 선생님 등, 법률에 명시된 '성년'의 기준 연령을 충족하지만, 오직 그것만이 충족된 'Another Child'들이 '윤아', '주리'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인상 깊은 장면이 더 많지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의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기에 삼가기로 한다.
영화 <미성년>의 소재 자체는 특별히 흥미로울 것이 없고,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이다. 그러나 이 특별할 것 없는 소재가 좋은 연출을 만나서 감독의 주제 의식이 거리낌 없이 잘 전달되는 좋은 영화가 된 것 같다. 군더더기 없고 잘 정돈된 느낌, 차분함과 섬세함이 깊이 전달된다. 감독 경력이 전혀 없는 배우가 연출한 영화임을 믿기 어려울 만큼 농익은 느낌의 영화이다.
미적 감각을 화려하게 뽐내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전해지는 영상미 또한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아래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산소 호흡기 소리만이 허공을 메우는 고요함 속에, 속삭이듯 오가는 두 소녀의 대화도 퍽 인상 깊다.
영화를 보고 나서 또 하나 놀라운 점은, 50대의 중년 남성이 두 소녀의 눈과 입을 통해 영화를 풀어나감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김윤석이라는 배우가 그동안 배우로서 보여준 모습들을 돌이켜 보면, 더더욱 놀라운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주로 맡아 온 배역들과 연기자로서 전달했던 에너지와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감성도 그 못지않게 내재 된 듯한 느낌인데, 이런 면모는 <미성년>처럼 드라마 장르를 연출할 때, 더욱 강점으로 작용할 것 같다. 김윤석에게 소녀 감성이라. 갑자기 뭔가 털이 서는 기분인데, 이 묘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황해(2010)>의 '면정학'을 소환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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