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 〈친구〉를 다시 감상했다. 몇 주 전부터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야 '감독판'으로 다시 보게 됐다. 이 영화가 벌써 18년 전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워낙 많은 명대사와 명장면을 남긴 터라,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도 여러 곳에서 두고두고 성대모사 및 패러디되어 왔다. 그 때문에 긴 시간 동안 영화가 사람들의 인식의 틀 안에서 머물 수 있었고, 18년 만큼의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동안 영화 〈친구〉는 한국형 느와르 장르의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18년 만에 다시 보니 '성장 드라마', '청춘 드라마'로 읽힐 수 있는 부분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영화 〈친구〉를 장르별로 구분하여 전체 영화의 전개 과정을 소개해보려 한다.
'성장 드라마'
1976년 부산의 한 동네.
마을의 소독과 방역을 위해 새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방구차(소독차)'의 뒤를 아이들이 뒤쫒아 따라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13살 동갑내기들인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 '상택(서태화)'과 '중호(정운택)'도 방구차를 따라다니며 놀기도 하고, 튜브 하나로 바다에 들어가 '조오련과 바다거북이가 수영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 것인가'를 놓고 말싸움을 벌이며 놀기도 한다.
'상택'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보통의 아이고, '준석'의 아버지(주현)는 폭력 조직의 두목이다. 그리고 '동수'의 아버지는 장의사이고, '중호'의 부모는 밀수업을 했다. '중호'의 집은 밀수업을 했기 때문에 당시에 잘 볼 수 없던 물건들이 많았다.
하루는 엄마가 일본에서 '테레비 녹음기(비디오)'를 가지고 왔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하자, '준석', '상택', '동수'는 어떻게 테레비를 녹음하냐며 말싸움을 벌인다. '중호'와 '상택'은 내기를 했고, 넷은 '중호'의 집에 가서 비디오로 성인 동영상을 보게 된다.
넷은 중학교 진학 전까지는 어디를 가나 항상 붙어 다녔다. '동수(장동건)'는 10살 때 전학을 왔는데,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장의사인 것을 몇 년간 숨길 정도로 부끄러워했다. 5학년 때 '동수' 아버지가 장의사라는 사실이 알려졌는데, 같은 동네에 살던 중학생이 '동수'를 놀리자 '준석(유오성)'이 나서서 싸워준다. 그때부터 '동수(장동건)'는 '준석(유오성)'을 좋아하게 됐고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이후, 넷은 중학교는 서로 다른 곳에 진학했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다시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1981년, 근처 여자고등학교의 개교기념일 행사에서 그룹사운드 '레인보우'의 보컬 '진숙(김보경)'을 보게 된다.
그날 이후 '준석(유오성)'의 친구 소개로 넷은 '준석'의 집에서 '진숙(김보경)'을 다시 보게 된다. '준석'과 '동수', '상택'은 모두 '진숙'에게 마음이 있었는데, 어느 일요일 오후에 '준석'의 집에서 '진숙'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상택'을 특별히 챙겼던 '준석'은 '진숙'을 '상택'에게 소개해 주고, '동수'는 그런 '준석'에게 불만을 느낀다. 여기서 영화 〈친구〉의 최고 명대사이자, 수많은 패러디를 탄생시킨 "내는 니 시다바리가?" 가 나온다.
'준석'의 집에서 처음 만난 '상택'과 '진숙'은 그날 이후 둘만의 만남을 가지며 관계를 이어간다. 하루는 롤러 스케이트장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근처 고등학생 무리를 만나 곤경에 처한다. 그때 '준석'과 '동수'가 나타나 '상택'을 구해준다.
"상택아, 다음에 또 아 X끼들 팰일 있으면 확실하게 조지야 된다. 그 정도로 그치면, 다음에 니 보면 또 해코지 할라고 달라든다. 누구를 조질 때는, 다음에 눈만 마주 치도 오줌을 찔끔 싸게끔 만들어나야 되는 기라. 아예 용서해주고 같은 편으로 만들든가 아니면, 차라리 빙X으로 만들어삐라. 그래야 뒤탈이 없다."
"좋다, 다음에 누구 팰일 있으면 그래하깨. 그라믄, 내 부탁 하나 들어도."
'상택'은 문제를 일으키고 무단결석 중인 '준석'에게 담임을 찾아가 잘못을 빌고 다시 학교에 나오라고 부탁한다. '상택'이 부탁하자, '준석'은 다음날 '동수'와 함께 담임을 찾아가 용서를 빈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나오게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문제가 터진다. 넷이 함께 영화관에 갔는데 거기서 예전에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시비가 붙었던 근처 고등학생들을 다시 만난 것이다.
그리고 단체 관람 중이었던 해당 고등학교 학생들과 큰 싸움이 벌어지고, 모두 크게 다치게 된다.
사고 이후, '동수(장동건)'는 퇴학 처리 됐고, '준석(유오성)'은 무기정학, '중호(정운택)'는 전학 조치, '상택(서태화)'은 유기 정학 처분을 받았다. '상택'은 죄책감에 집에서 돈을 훔쳐 가출해 '준석'을 찾아간다. 그러나 '준석'은 돈을 가지고 가출해온 '상택'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낸다.
"상택아... 니가 돈 들고 가출해가 내한테 찾아오면, 내가 '우와 상택아 잘했다, 인자 우리 같이 건달 해가 같이 인생 개판 치자.' 그랄 줄 알았나?
내가 중학교 때 한 번 가출하고 돌아오니까,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던 새X들 중에 한 놈이라도 내를 뭐라 하는 새X가 없는 기라, 씨X. 그때, 한 놈이라도 내를 패주기라도 했으면, 혹시 내가 그때 정신 차렸을지도 모르는데..."
"인자부터 니는 니처럼 살아라. 나는 내처럼 살게."
'청춘 드라마'
1984년, 겨울.
21살, 대학생이 된 '상택'과 '중호'는 '준석'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간다. 그리고 대문을 열어준 사람이 '진숙(김보경)'임을 확인하고 매우 놀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상택(서태화)'과 '중호(정운택)'는 대학에 진학했고, '준석(유오성)'은 약에 중독된 채 '진숙'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 장례는 잘 치랐나?"
"동수(장동건) 집이 장의사 아이가. 잘 치랐다."
"요새 동수는 어째 지내노?"
"빵에 있다. 나도 한 번 갔다 왔다. 지도 크려면 최소한 별은 한 개 달아야지.
상택아, 니 파카 입고 왔제? 우리 크리스마스 카드 사러 가자. 우리 엄마한테 카드라도 하나 붙일라고. 우리 엄마 X나게 불쌍하다. 내 하나 놓고 성질 더러운 영감 수발이나 들다가 병원에서만 5년 넘게 살다가 죽었다 아이가."
"상택아, 우리 약속 하나 하자. 나는 배운 게 깡패 질이니까, 니가 살다가 정말 지기삐고 싶은 놈이 있으면 내한테 딱 한 놈만 말해라. 그라고, 나중에 내가 늙어가 건달 짓 못하게 돼서 니 찾아가믄, 그때 내 개인택시 한 대만 빼줄래? 나도 죽을 때까지 신세 질 수 없다 아이가."
이후, '준석(유오성)'은 아버지(주현)가 젊은 시절에 이끌었던 조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상택(서태화)'은 군에 입대했고, '동수(장동건)'는 감옥에서 출소했다. 군 입대한 '상택'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준석'의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 다시 만난다.
"5학년 때 연탄 집 명길이가, 내 입술이 빨간 거는 우리 아버지가 죽은 사람들 간을 많이 먹여가 그렇다고 놀렸다 아이가. 금마는 그때 중학생인데, 니가 내 대신 한 판 붙었다 아이가. 그다음부터 내가 니 따라댕겼고."
"그랬나."
- "내는 내일부터 상곤이 형님(이재용) 밑으로 들어간다." - "거기는 건달 아이다. 양아치다. 모르나? 꼬마들한테도 약 파는 거?"
- "상관없다."
- "동수야... 상곤이 따라당기면..."
- "장의사보다 낫다 아이가."
아버지가 장의사인 '동수(장동건)'는 준석(유오성)'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도움을 줬다. 그러나 '동수'가 출소 후에 찾아간 곳은, '준석'의 아버지가 이끌던 조직을 배신하고 나간 '상곤'의 조직이었다. 그리고 '준석'과 '동수'가 서로 손을 맞잡은 것은 이날이 마지막이 됐다.
“우리 넷 중, 삶의 색깔이 비슷했던 둘마저도
또다시 각자의 색깔로 쪼개지고 말았다.”
(영화〈친구〉에서 '상택'의 나레이션)
'한국형 느와르'
1990년, 가을
27살, 20대 후반에 접어든 '상택'과 '준석'은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상택'은 미국 유학에서 돌아왔고, 그 사이 '준석'은 조직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반가운 마음에 술잔을 기울인다.
한편, 다른 조직에 속한 '동수(장동건)'도 '준석'만큼 중요한 자리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 두 조직은 부산의 건설업과 원양어업 영역에서 경쟁적인 관계에 놓이며, 서로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 "상곤이 금마 괜찮겠나? 가마이 놔둬도?"
- "가마이 안 놔두면? 옛날의 상곤이 아이다. 함부로 건들면 안 된다."
- "그라면 밑에 놈 하나 작업하까?"
'준석'의 일원이 경쟁 조직에서 핵심적인 일을 하는 '동수'를 겨냥해 말을 하자, '준석'은 단호히 제지한다.
"우리 엄마, 아버지 둘 다 장례 치러줬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그러나 '동수'의 마음은 '준석'과는 좀 다른 듯해 보인다. 친구들과 간혹 연락을 주고받아 온 '준석'과는 달리, '동수'는 그동안 '상택'과 '중호'와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상택'과 '중호'와는 이미 멀어져 있었고, 그나마 같은 세계에 발 담가 있던 '준석'과도 경쟁 관계에 놓이면서 조금씩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 "내일 저녁에 밥 무러 온나."
- "니가 오라 하믄 내가 가야 되나?"
- "상택이하고 중호하고 보기로 했다. 웬만하면 들리라."
- "아~ 상택이... 금마 요새 머하노? 보고, 시간 봐서 가든가."
- "요새 동수는 우째 지내노?"
- "안 좋다, 둘이. 동수가 저거 조직에서 마이 컸는 갑더라. 신문 봤제?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이다 뭐다 시작한다고, 요새 건달들이 완전히 비상 아이가. 상곤이가 돈이 많으니까 위에 있던 줄이 전부 그쪽으로 옮기는데, 동수가 일을 마이 한다 카데."
'준석'과 '동수'의 관계는 국내 정세와 엮여서 더욱 심각하게 꼬여간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폭력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행된다. 그리고 '동수'의 조직에서 먼저, '준석'이 속한 조직의 범죄 혐의를 경찰에 밀고했고 이 일로 '준석'의 조직 보스가 구속된다.
이후 '동수'가 '준석'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준석'의 조직원은, '준석' 몰래 '동수'의 집을 급습한다. '준석'이 지시한 것으로 오해한 '동수'는 다시 '준석'의 조직을 쳐들어갔고, 여기서 '준석'의 조직은 큰 타격을 입는다.
"준석이는 어데 있노?"
때마침 자리에 없던 '준석'은 '동수' 조직의 기습을 피할 수 있었고, 사망한 조직원들의 화장터를 지킨다.
이제부터 '준석'과 '동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준석'은 이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도 '동수'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인 '동수'를 이해하며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동수'도 이런 '준석'의 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 둘의 의지와 관계없이 '준석'과 '동수'는 아주 처절할 정도로 파국에 직면한다.
영화 〈친구〉는 꼬마 시절부터 함께한 네 명의 친구들의 생애를 담고 있다. 따라서 '성장 드라마'와 '청춘 드라마'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영화 후반부에서는 아주 독한 '느와르'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는 지금의 '곽경택' 감독을 있게 한 영화인 동시에, '유오성'과 '장동건'을 명배우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이기도 하다.
90년대 말, 〈접속(1997)〉과 〈쉬리(1999)〉 등이 한국 영화의 흥행 가도를 열었고, 〈친구(2001)〉는 그 배턴(baton)을 받아 2000년대로 이어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친구〉는 개봉 당시에 흥행 성공은 물론이고, 문화계 전반에 걸쳐 큰 이슈였다.
이처럼 수많은 명대사를 남겼고 이와 함께 영화의 각종 장면이 패러디되어,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도 꽤 긴 시간 동안 대중문화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그러나 영화 〈친구〉가 개봉된 지 12년 후인 2013년에 개봉한 〈친구2〉는 개인적으로 역대급 뒤통수를 맞은 영화였다. 같은 감독의 영화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전혀 다른 감상을 남기게 한 영화였다. 글이 마무리되는 시점인데 부정적인 얘기는 그만하고 다시 〈친구1〉로 돌아가겠다.
아주 오랜 시간 만에 다시 본 영화 〈친구(2001)〉는 다시 봐도 그 느낌을 그대로 되살리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 당시에는 못 느꼈지만, 2001년 개봉 영화라서 그런지 90년대 느낌이 나는 연출이 몇몇 장면에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촌스럽기보다는 반갑고 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두 가지 놀라운 점이 있다. 첫 번째는 이 영화를 18년 만에 처음 다시 봤다는 것이다. 이게 놀라운 이유는, 영화가 비교적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었으므로, 그동안 몇 차례는 다시 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2001년 이후로 이 영화를 다시 본 사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두 번째 놀라운 점도 이와 관련이 있다. 18년 동안 다시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영화인데, 영화의 명대사와 명장면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무려 18년 전 영화인데도 그렇다. 너무 생생한 기억 때문에 계산을 잘못한 게 아닌가 싶어 바보처럼 2019 빼기 2001을 몇 번이나 검산했을 정도였다. 아마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도 명대사, 명장면이 수없이 패러디되어 재생산, 재배포 되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번 봤던 영화는 다시 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본 영화라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면 다시보기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가 〈친구〉이다. 영화의 구성도 알차고 지루하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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