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윤석열 정부 이전에 경찰국 설치를 시도했던 정부가 있었다. 마지막 군사정권이었던 노태우 정부 때였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왜 지금에 와서 또다시 경찰국 설치를 시도하는가? 일각에서는 검찰에 집중됐던 권력이 수사권 분리를 통해 분산되니, 다시 수사권을 가진 경찰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이웅혁 교수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경찰국 신설은 경찰의 중립성 침해, 헌법 위배”
경찰국을 신설하겠다는 것은 행안부 장관을 통해 정부가 경찰을 통제하겠다는 것인데,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이 보였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검찰의 권한을 경찰로 분산한 만큼, 논리에 충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찰에게 수사권 넘겨준 검찰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경찰국 설치
정권이 경찰국을 신설해 경찰을 직접 통제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찰 역사를 비추어 봤을 때, 이런 식의 중앙집권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는 국가에 대한 봉사나 시민에 대한 봉사보다는 이른바 국민 억압기구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찰국 신설이 왜 문제가 되는지, 정부가 경찰국을 설치하고 행안부 장관을 통해 경찰의 인사권과 예산을 직접 통제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냉정하게 짚어보기 위해서는 6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경찰의 역사를 살필 필요가 있다.
▶ 4·19 혁명
1960년 4월,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하는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들고 일어나면서 이승만 독재정권을 끌어내린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민 혁명
1960년 4·19 혁명 이전, 경찰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내무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이른바 이승만 어른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면서 치안국장에게 지시하고, 치안국장이 다시 경찰서장에게 그 지시를 전달하면서 경찰서 자체가 정권의 도구로 활용이 됐다. 선거 자금도 경찰서로 가게 되고, 사법 형사들이 야당이 주최하는 집회를 물리적으로 막기도 하는 등 선거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1960년 4·19 혁명을 통해 이승만 독재정권이 끝나면서 그간 수많은 부정부패에 활용됐던 경찰은 제2공화국 헌법을 통해 경찰 중립화가 제도적으로 보장됐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 경찰 중립화는 '4.19의 아들이다, 4.19의 정신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듯, 1960년 당시 제2공화국 헌법으로 경찰 중립화가 보장됐다. 헌법에서 경찰 중립화를 보장했을 뿐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경찰의 중립화를 보장하는 조항이 헌법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 5·16군사정변 (5.16 군사 쿠데타)
1961년 5월 16일 새벽, 육군 소장 박정희와 중령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8기생들이 장교 250여 명, 사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했다. 이 군인들은 제2공화국을 군사력으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후 독재정권을 수립했다.
우리나라는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를 통해 다시 한번 긴 독재정권의 터널로 들어서게 됐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사망과 함께 활발한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면서 잠시 '민주화의 봄'을 맞기도 했지만, 같은 해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또 다른 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 반란으로, 이후부터 대한민국은 신군부 세력의 군사독재를 맞게 된다.
▶ 12·12사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술자리에서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한 후, 보안사령관 전두환 · 9사단장 노태우 등 '하나회' 소속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 반란 사건
우리나라는 이승만 독재정권을 끌어내린 4·19 혁명 이후에도 1961년 5·16군사정변, 1979년 12·12사태를 거치면서 긴 세월 동안 군사독재에 의한 민주주의 암흑기를 겪었고, 이 기간 동안 경찰은 독재 정권의 손아귀 안에서 그 하수인 노릇을 했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헌법에서 경찰 중립화 조항이 빠지면서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경찰은 민주화 운동 세력의 감시와 탄압, 고문 등을 일삼으며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은 수십년간 이어진 군사독재 정권에 마침표를 찍었다. 긴 세월 수많은 목숨의 희생으로 얻어진 민주주의는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국민주권 시대'의 외형을 갖추게 했다. 전두환과 군사 반란을 도모했던 노태우는 1987년 '6·29 선언'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통한 평화적 정권 이양을 약속하며 사실상 항복 선언했다.
87년 민주화 물결에 따라 군사독재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경찰도 '국민의 경찰'로 변모를 모색했다. 경찰이 제도적으로 완전히 정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1991년 내무장관 보관 업무에서 '시국 치안 업무'가 공식적으로 빠지는 등 경찰은 30년 만에 '경찰청'으로 독립했다.
한편, 1991년 마지막 군사정권이었던 노태우 정권이 시국 치안·정권 재창출에 경찰을 이용하려 한다는 지탄을 받으면서도 경찰국 설치를 시도했지만, 그 해 경찰청으로 독립한 경찰 구성원의 저항과 국민 여론에 부딪혀 실패로 끝났다.
▶ 1991년 노태우 정권의 경찰국
노태우 정권은 내무부 내에 경찰국이나 치안국을 만들어 경찰을 계속 통제하고자 했다. 또 경찰을 통제할 목적으로 지휘·감독 규칙까지 만들려고 한 바 있다.
'수사권을 경찰에 넘긴 검찰'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경찰국 설치'
윤석열 정부는 임기가 얼마 지나지 않은 현시점에서 이미 인사 구성 방식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경찰국 신설 문제도 이러한 윤석열식 인사 방식의 연장선으로 읽히며 거센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장·차관급 및 대통령실 인사에서 이미 16명의 전직 검사들을 대거 임명했다.
< 윤석열 정부 인사 구성 >
위에서 보다시피, 장·차관급 및 대통령실 인사에서 검찰 출신이 국정의 주요 기능을 모두 잠식한 상황이다. 검찰 공화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내각 구성과 비교했을 때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지난달, 검찰 시절 윤석열의 '오른팔', '최측근'으로 불리던 한동훈 전 검사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고 단행한 법무·검찰 고위 간부 인사도 '윤석열계' 검사들을 요직에 기용하는 한편, 문재인 정부에서 중용됐던 이성윤 서울고검장,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 이정현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을 모두 연구위원으로 발령했다. 연구위원 정원을 늘려서까지 전임 정부에서 중용된 인사들을 모두 한직으로 발령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첫 검찰 정기인사 또한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특수통(특수부) 검사들이 주요 보직에 중용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렇듯 윤석열 정부의 인사에는 하나의 공통된 원칙이 발견된다. 바로 '검찰 출신' 그리고 검찰 중에서도 '윤석열 사단'의 특수통 검사들이 중용된다는 것이다.
검찰 공화국이란 비판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장·차관 인사, 대통령실 인사, 법무·검찰 인사 등 주요 국정 기능에 대부분에서 '검찰 출신', '윤석열 사단', '특수통 검사'들로 장식하면서 해당 부처의 그 고유 기능을 자기 입맛대로 통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바로 이러한 '윤석열식' 인사 방식이 행안부 산하에 경찰국을 설치해 경찰 인사권과 예산을 손에 쥐고 경찰이 검찰에게 넘겨받은 수사권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되는 배경이다. 그리고 현재 경찰 구성원들은 1991년 노태우 정부가 경찰국을 설치하려던 때와 마찬가지로 완강히 거부하며 집단적인 의사 표현을 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정권 초기에, 경찰 조직이 이렇게 집단적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검찰은 정권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도 나중에 변호사라는 직업을 또 한 번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경찰은 이런 문제로 경찰을 그만두게 됐을 때 검찰처럼 다른 직업을 갖는 것에 상당히 취약하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은, 지금 경찰이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상당히 잘 인식하고 있고, 헌법 가치 그리고 법치 행정에 부합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경찰 수뇌부 대응이 어떻게 이루어질지가 관심 사안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발언이 경찰의 자긍심을 손상한 부분도 경찰 구성원들이 집단적 의사 표현을 하는 것에 동기 부여가 됐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공무원들은 아무 말 안 하는데 왜 경찰은 독립하려고 하느냐?'라는 식의 발언은, 경찰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 정치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그런 하수인으로 여기는, 과거의 그 상하관계로 인식하는 것이 투영된 발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부조직법 상에 보더라도 행안부 장관의 사무에 치안 사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87년 민주화 물결 이후 91년, 경찰이 경찰청으로 독립하면서부터 정권이 경찰을 예속시켜 정권의 바람막이, 정권 유지의 도구로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경찰 독립 관련 발언은 시대를 역행해 민주화 이전, 독재정권이 경찰을 완전히 통제하며 정치권력의 시녀로 부리던 때에나 존재했던 인식이라 볼 수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검찰 인사권을 놓고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상당한 마찰을 빚은 사례가 언론을 통해 전달된 바 있다. 검찰총장으로서 검찰 인사에 관해 법무부 장관과 비등한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검사 시절, 윤석열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한동훈 검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검찰총장 없이 법무·검찰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법무·검찰 인사만이 아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포함해 정부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부처에 '검찰 출신', '윤석열 사단', '특수부 출신'들이 대거 중용됐다. 정부 출범 한 달 남짓한 시점에서 이미 장관급 인사 6명, 차관급 인사 5명, 대통령실 인사 6명이 검찰 출신으로 채워졌다.
출퇴근을 같이했던 카풀 후배, 부인 김건희 씨의 변호인 등의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 공정거래위원장, 국정원 기조실장, 국가보훈처장, 총리 비서실장 등 장·차관급 요직에 유력 후보가 되거나 이미 임명되었다. 이처럼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검찰 출신의 '윤석열 사단'들을 임명해 입맛대로 그 기능을 통제하겠다는 식의 인사를 남발해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듣는 것이다.
경찰국 설치도 이러한 인사 행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충암고·서울대 후배 이상민(57, 연수원 18기)을 행안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행안부 산하의 경찰국 신설을 시도하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청장 후보 자격이 주어지는 치안정감 6명에 대해 본인이 직접 면접을 시행에 경찰 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기존에 치안정감으로 승진이 점쳐지던 후보 6명을 전원 물갈이하고 이뤄진 인사라, 경찰 내부에서는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치안정감으로 승진시켜 그중에 경찰청장을 고르려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통일부 장관·법무부 장관·국토교통부 장관·국가보훈처장·공정거래위원장 등의 장관급 인사, 법제처장·국무총리 비서실장·법무부 차관·금융감독원장·국정원 기조실장 등의 차관급 인사 그리고 인사기획관(인사수석)·총무 비서관·부속실장(제1부속비서관)·인사비서관·공직기강비서관·법률비서관 등의 대통령실 인사가 모두 검찰 출신으로 이뤄졌다.
과거, 검찰총장이던 윤석열은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등 대통령 인사권에도 자기 목소리를 냈고 이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는 검찰 인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등 선을 넘나들며 검찰총장의 역할과 권한을 과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검찰총장 없이 '최측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법무·검찰 인사를 '윤석열 사단'으로 채우고 있다.
이제는 경찰이다. 권력 독점 문제로 경찰에게 수사권을 넘겨줘야 했던 검찰.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이제는 경찰의 '수사권'을 응시하고 있다. 군사독재 정권이 헌법에서 빼버린 경찰의 중립화 조항. 민주화 이후 91년, 드디어 다시 찾은 경찰의 독립과 중립화 보장. 그리고 마지막 군사정권이었던 노태우 정권이 실패한 경찰국 설치가 2022년 다시 한번 시도되고 있다. 행안부 산하에 경찰국이 신설되고 정부가 인사권, 예산, 징계권을 통해 입맛대로 경찰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이제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거대 권력이 탄생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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