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히로시, '현재 일본 상황은 패망 직전의 군국주의 때와 비슷하다.'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다나카 교수는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모순적 태도를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원폭 피해자나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에게는 각각 미국과 소련에 대해 개인적 권리를 찾으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그러면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은 부정하고 있는 아베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다나카 교수는, 지난 2016년에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해 원폭 피해자를 만난 사례도 언급했다.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그 당시, 오바마 대통령 옆에 아베 총리가 서 있었습니다. 오바마가 저렇게까지 하면 (아베도) 각오를 다지고 (한국의) '나눔의 집'에 갈 생각을 왜 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시절에 앞서,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정부 시절에 이미 일본인 강제수용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죄하고 개별 보상금도 지급한 바가 있다.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아버지 부시는 102세 일본인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서 편지를 준 게 당시 일본 신문에도 보도됐습니다. (일본은) 자기가 당했을 때는 기억하고, 자기가 한 일은 잊어버린 겁니다.
다나카 교수는, 일본 정부가 이처럼 피해의 역사는 생생히 기억하며 피해자로서의 목소리를 강조하며 보상을 받으면서, 가해의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해결 끝'이라고 도망가려고 하는데, 역사 문제가 얼마나 무거운 문제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한편, 다나카 교수는 아베 정부의 추태에 대해서 침묵으로 방조하거나 지지하고 있는 일본 언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비판 기능을 상실한 현재의 일본 언론 지형에 대해, 태평양 전쟁 당시 군국주의 일본이 떠오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전쟁 전 군국주의 시대에 군부가 전쟁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에 대해 국민 모두가 다 같이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자 패전국인 일본은, 일본 헌법 제9조('평화헌법')에 의해 집단적 자위권의 권리는 갖지만 행사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다른 국가에 대해 먼저 무력을 행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2014년 7월, 아베 일본 총리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나라에 무력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에게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최소한의 실력행사는 헌법상 허용된다."며 헌법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베 일본 총리의 정치적 최종 목표는 헌법을 개정해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못을 박는 것이다. 아베는 숙원사업인 개헌을 위해 그동안 극진히 공을 들여왔다. 그동안에는 주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 등을 활용해 국민 여론을 조성해왔지만, 최근에는 한국을 새롭게 끌어들이고 있다.
강제징용 등의 과거사 문제와 무기 제조에 활용될 수 있는 불화수소(에칭가스)가 한국을 통해 북한으로 밀반입된다는 억측을 내세우며 한국에 수출규제를 하는 등, 반한 또는 혐한 정서를 조장하고 그에 올라타 개헌 여론을 모으고 있다.
다나카 교수는 아베의 이런 여론 조성 움직임에 일본 언론이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여 개헌 여론을 조성하고 있는 아베 정부의 행태에 대해 일본 언론이 동조하거나 방조하면서 한목소리를 내는 현 상황이, 태평양 전쟁 당시의 군국주의 일본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과거, 일본 정부는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부정하지 않았다. 1991년 당시,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은 국회에 출석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개인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말을 바꾸는 일본 정부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일본 언론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일본의 미디어는 굉장히 약화되어 있습니다. 비판의 눈에서 멀어졌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미디어가 '(개인청구권 문제가) 다 해결 안 됐잖습니까? 외무성 조약국장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다 해결됐다고 하는 겁니까?'라고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나카 히로시 교수는 올해 82세로 '전범국 일본'과 '패전국 일본'을 경험한, 이른바 '전쟁 세대'이다. 이런 이유에서, '아베 정권에 대해 '노'라고 말하는 언론이 사라진 일본의 현실이 패망 직전 군국주의 때와 비슷하다.'는 다나카 교수의 분석은 의미가 깊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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