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농성',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저항 수단.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한 번쯤 들어본 말일 수도 있고, 생소한 말일 수도 있겠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무려 30여 년 전인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있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 최승우 씨는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현재 2년이 넘도록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은 누구인가? 1975년부터 1987년 즉, 박정희 정권 시절 일부와 전두환 정권 시절에 걸쳐,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근거해 국가 차원의 '사회정화사업'이 펼쳐졌다.
그 일환으로, 길거리의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장애인이나 고아를 비롯해 일반 시민을 잡아들인 것이다.
이렇게 납치되어 감금된 사람들은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행을 당했고 해외로 팔려나가거나 암매장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망자 수는 500여 명에 달하며, 감금됐던 사람은 3,500여 명에 달한다.
1987년 1월, 독재정권의 몰락과 민주화의 꽃이 피기 직전, 형제복지원 원장을 비롯해 직원 5명이 구속되면서 이 끔찍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김용원 검사는 검찰 윗선과 청와대가 나서 수사를 방해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박희태 부산지검장은 사건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은 인물이다. 박희태 당시 부산지검장은 자유한국당 전신인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직을 누렸고, 이후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상임고문까지 맡았다.
또한,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에게 '특수감금죄'를 면하게 해 준 이도 있다. 당시 김용준 대법관은 형제복지원 수용자가 야간도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창 안에서 자도록 한 것이다며, 형제복지원 원장에게 특수감금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박인근은 폭행, 살인, 시신유기 등의 중범죄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불과 2년여 만에 출소했다.
그리고 김용준 대법관은 20여 년이 지난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기도 했다.
1987년 1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지면서 감금됐던 피해자들은 해방됐다. 그러나 오랜 기간 감금됐던 이들은 정상적으로 사회에 자리 잡지 못했다. 형제복지원에서 풀려나 해방된 이들 중 상당수는 고아원을 전전하거나,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됐고,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다.
지금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최승우 씨는 14살이었던 1981년 당시, 빵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형제복지원에 잡혀들어가서 5년 동안 감금되었다가 19살 때 풀려났다. 그리고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 조사를 요구하며 2년 넘게 농성 중이다.
지난 19대 국회 때, 진선미 의원에 의해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사실상 폐기된 바 있다. 그리고 20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법사위' 통과를 앞두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위원의 반대 속에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소속 위원의 찬성으로 법안이 관련 상임위인 '행안위'에서 통과된 것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가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지난 750여 일 동안 농성하며 투쟁한 결실이 맺어지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지난 19대 국회 때 관련 법안이 한 번 폐기된 바 있듯이, 안도하기는 이른 것 같다. 최승우 씨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승우 : 제가 여기에 올라온 것도 20대 국회가 지금 회기가 얼마 안 남았잖아요. 5개월 남았는데 또 이렇게 폐기가 돼 버리면 또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제가 지금 밑에서 노숙 농성만 지금 벌써 2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제가 마지막 5개월 남은 회기 안에서 법을 좀 통과시켜 달라는 그런 입장에서 올라오게 됐습니다. (26일, 'tbs 김어준 뉴스공장' 인터뷰 중)
지난 2년여 동안 국회 앞에서 지상 농성을 이어온 최승우 씨는 얼마 전부터는, 국회 앞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탑 위로 올라가 고공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최승우 씨는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과거사법이 이번 20대 국회에서 통과돼야만 단식을 끝내고 내려가겠다고 밝힌 상태다. 최승우 씨는 26일 현재, 21일째 물과 소금만 섭취하며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에 한두 번 생수와 휴대용 배터리가 지붕 위로 전달되고 있다.
지하철 국회의사당역 엘리베이터 탑 위에서 21일째 단식 중인 최승우 씨는, 단식 농성도 차별받는 것 같다며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승우 : 제가 단식을 하고 있는데, 국회 정문 앞에서 하고 있는데, 황교안 대표님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하시다가 여의도로, 국회 앞으로 왔더라고요. 그쪽으로 보니까 카메라로 당겨보니까 그쪽에는 수행원들도 많고, 전기까지 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경찰관분들한테 전기 좀 끌어달라고 했죠. 그런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26일, 'tbs 김어준 뉴스공장' 인터뷰 중)
최승우 씨와 마찬가지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현재 단식 농성 중이다. 최승우 씨는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통과되기를 염원하며 단식 농성 중인 반면, 황교안 대표는 '공수처 설치 법안(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과 '선거법 개혁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단식 농성 중이다.
현재, 황교안 대표는 국회 본청 앞과 청와대 사랑채 앞에 각각 천막을 설치해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6일 기준, 최승우 씨는 21일째, 황교안 대표는 7일째 단식 중이다.
위 사진은 국회 본청 앞에 설치된 황교안 대표의 천막인데, 침구와 생수 그리고 전기난로가 갖춰져 있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청와대 사랑채 앞에 설치된 황교안 대표의 천막이다.
황교안 대표 측은, 혈압이 떨어지고 단백뇨 증상이 시작됐다고 알렸으며, 119에 신고하면 언제든지 구급차와 의료진이 도착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해 놓았다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 사랑채 앞에는 보안상 천막을 설치해 농성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황교안 대표 측에 천막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황 대표 측은 청와대 요청과 관계없이 단식 농성을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황교안 대표는 어제까지 국회와 청와대 앞에 설치한 천막을 오가며 단식 농성을 해왔지만, 오늘(26일)은 청와대 사랑채 앞에 설치한 천막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최승우 씨의 단식 농성과는 달리, 황교안 대표의 단식 농성장에는 그동안 많은 이들이 찾아 왔다.
자유한국당 최고위원들은 매일 천막을 찾아왔고, 강기정 정무수석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유승민 의원 등 다른 당의 유력 정치인과 청와대 관계자가 황 대표의 단식을 만류하며 건강을 염려했다.
뿐만 아니라, 황교안 대표의 천막에는 지지자들과 수많은 언론 카메라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리고 황교안 대표의 단식농성을 보살피기 위해 자유한국당 당직자들이 주·야 2교대로 항시 대기하고 있다.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 위에서 고공 단식 농성 중인 최승우 씨는 매일 이런 모습을 보고 있다. 똑같은 단식농성이지만 대우는 너무 다르다.
오래전부터 '삭발'과 '단식'은 가진 것 없는 약자가 행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인식과 충돌하는 장면들이 목격되고 있다. 우리나라 거대 정당이자 제1야당 국회의원들의 '삭발 릴레이'가 그렇다. 이들의 '삭발 릴레이'는 한동안 지속하는 듯하다가, 모 원내대표에게 '언제 삭발 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물음이 계속되자 그제야 그 릴레이는 멈춰 섰다.
'단식'도 같은 곳에서 나왔다. 지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했으며, 현재 제1야당의 대표이자 차기 대선 후보로 호명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을 하고 있다.
지난 16일, 창립 이후 50년간 무노조 경영을 이어온 삼성전자에서 노동조합이 공식 출범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득권 정당이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의 '삭발'과 황교안 당 대표의 '단식'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삭발 투쟁'이나 '단식 농성'도 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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